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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 영원한 시간 속의 기억

by jjvoka 2022.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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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중에서

 

아버지가 죽었다

책은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외동딸인 '고아리'의 시선으로 장례를 치르며 과거의 기억 즉 아버지의 삶을 오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죽음'이란 단어에 상당히 무거울 것 같은 소설로 보이지만 이야기가 진행 될수록 느껴지는 화자의 모습은 우직한 사내 모습이 연상되고 가련함, 청순함과는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웃음 코드를 가득 머금은 이야기는 진행이 인상적이다.

​뼈속 까지 사회주의자인 아버지의 삶을 돌아보며 그의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를 심어줄 것도 같지만 진지할 때면 고물 자전거의 찌그덕 거림과 같은 느낌으로 묘한 웃음을 준다.

​삶이 각박해지기도 했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격리는 우리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힐링 소설 눈에 많이 띄는 것도 사실이다. 나 또한 위로와 감동을 주는 소설을 많이 읽어 왔지만,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처음 부터 웃음으로 도발하며 아버지의 죽음이란 무거움을 희석 시켜준다.

​아버지 고상욱씨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이야기는 극 초반부터 시작된다. 엄동설한 소쿠리를 판매하는 여인네를 안쓰럽게 생각하여 집안으로 들여와 없는 살림에 극진한 식사 대접과 잠자리까지 마련해 주지만 결국 마늘 반접까지 싸 들고 도망가 버린다. 

​난 이런 작가가 풀어가는 유머 코드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어머니는, 허리가 아파 평소 된장찌개와 김치밖에 내놓지 않던 어머니는, 찬장에 고이 모셔둔 새 접시까지 총동원하여 당신으로서는 최대한의 극진한 식사와 잠자리를 대접했다. 민중에게.
아버지와 민중의 그날 밤 내게 남긴 것은 벼룩이었다. 
대신 가져간 것은 서까래에 매달아놓은 마늘 반접이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중에서

 


그렇듯 아버지의 인생은 평생 남에게 베풀어 왔지 돌아오는 건 가족들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만 늘어간다. 

보증마저 잘 못서 딸이 떠안아야 할 상황이 발생할 만큼 그녀의 아버지는 받지는 못했지만 베푸는 인생을 살아왔던 것이다. ​​

시간 속의 존재, 아버지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렸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중에서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그의 삶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이 시점 부터일까.

담배 친구라 자칭하는 앳돼 보이는 노란 머리 소년이 문상을 오면서 부터 점점 분위기가 무르 익어 가기 시작한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 저마다 사연이 있었고, 그가 살아온 인생은 절대 헛된 인생이 아닌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뒤 바꿀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조문을 하고 가는 사람들은 한결 같았다. ​​

 

"또 올라네."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 번만 와도 되는데. 한 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 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 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중에서


마냥 웃기고 재미있게만 이야기가 전개 될줄로만 알았는데 잽을 날리듯 감정의 골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이윽고 강한 펀치를 날리듯 한껏 눈물샘을 자극하며 깊은 여운을 남기고 소설은 마무리된다.

아버지가 돌아가고서야 그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며 유언대로 이름 모를 산에 유골을 뿌리지 않고 아버지의 추억이 서린 장소를 다니며 유골을 뿌리는 장면은 실컷 눈물 흘리게 만들어 주었다. 

글을 쓰는 사람의 시선으로 배워 보겠노라 책을 읽다 보니 작가의 웃고 울게 만드는 놀라운 필력과 강렬한 스토리텔링은 마치 언어의 마술사 같은 느낌마저 들기도 했다.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작가만의 영역.​​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해방일지' 중에서

10월 책을 구입하며 대관령 정상에서 읽어볼 생각으로 책을 가져갔지만 12월이 다 돼서야 책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재밌는 소설로만 착각해서인지 마지막 깊이 사무치는 여운은 오래도록 남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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