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VOKA
선자령을 다녀온 후 강추위가 몰려오기 전 마지막 백패킹을 구상해 본다.
멀리 갈 순 없고 내가 거주하는 화성 인근으로 찾아보는데 '무봉산'이 눈에 들어온다.
동탄면 중리와 목리, 신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화성시에서는 가장 높고(362m) 큰 산이다.
코스는 만의사 주차장인 ①코스로 시작하여 무봉산 정상까지 가는 코스로 잡았다.
만의사 사찰 안에서 시작되는 ④번 코스로 가면 상당히 빠를 것 같았으나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니 산세가 상당히 험하고 현재는 폐쇄된 등산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계용으로 구입한 텐트를 배낭 밖으로 묶어 주었고, 동계용 침낭은 배낭 멘 아래에 넣었다.
선자령 갈 때만 해도 반대로 했었는데 침낭이 워낙 크다 보니 대중교통 이동 시 상당히 불편했었다.
서로의 위치만 바꿨을 뿐인데 상당히 심플 해진 느낌이다.
지난 백패킹 때 비화식으로 갔었기에 얼기 직전의 김밥을 먹으며 다음엔 뜨근한 국물을 꼭 먹어보겠노라 다짐하며 끝내 '바로쿡'을 구매했다.
덕분에 물, 소주, 먹거리를 잔뜩 넣다 보니 20kg을 육박하던 배낭이 23kg에 육박하게 된다.
만의사 주차장에서 무봉산 정상까지는 대략 1.9km 정도가 측정되었다.
다만, 가파른 계단과 고개가 정상까지 이어지고 있어 마치 태행산을 연상시킨다.
지난 태행산 때는 오기가 발동되어 휴식 없이 올랐기에 극한의 체험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생각해보니 참 미련한 오기 발동이었단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번엔 스틱도 사용하고 세 번의 휴식을 취하고 올라가서 인지 태행산 때처럼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진 못했지만 지난번보다 단 몇 킬로 더 늘어났다고 상당한 부하가 느껴졌다.
그래도 50여분 이동에 20분 휴식으로 1시간 10분 정도 소요로 정산에 다다를 수 있었다.
만의사 입구 좌측으로 등산로 안내도가 보이고 등산로가 시작된다
일단 시작부터 빡쎈 계단으로 시작되기에 초반부터 땀 꽤나 흘리게 만든다.
가파른 계단과 아흔아홉고개가 도사리지만 그래도 군데 구데 설치된 쉴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힘들다고 느낄 즈음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게 무봉산의 장점인 것 같다.
그렇게 1시간 10여 분 만에 정상에 도착하는데 도착하자마자 바로 비가 와 거쳐왔던 정자로 내려간다.
비를 피해 사람들이 정자로 모여들고 저마다 한마디씩 나에게 해대는데 마치 내가 장작불이라도 피워 바베큐라도 해먹을 것처럼 보였나 보다.
비는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저마다 갈 길로 흩어지지만 궂은 날씨에도 등산객들은 쉴 새 없이 오르고 결국 일기예보는 정확도 99%의 확률로 구름비를 몰고 오고 있었다.
건강 검진으로 인해 단식 겸 40시간이 넘도록 먹은 거라곤 병원에서 준 두유 한 잔이 전부였는데 자리를 펴지 못하니 이도 저도 하지 못한다.
심지어 산에서 처음 느끼는 음산함.
안되겠다 싶어 비가 쏟아지기 전에 하산을 결심하고 서둘러 내려온다.
주차장에 도착해 차 문을 열려 하니 열리지 않다.
힙색에 넣어둔 차 키가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차도 없어 급한 마음에 내 차 옆으로 배낭을 풀러 놓고 뛰다시피 다시 오른다.
제일 오래 머무른 정상인 근 정자까지 가보지만 역시 키를 찾을 수 없었다.
날은 깜깜해졌고 비는 쏟아지고 라이트 하나로 바닥을 훑으며 내려오는데 역시 키가 없다.
이쯤 되니 누군가 나를 붙잡아 놓으려는 묘한 기분이 몰려온다.
무봉산 만의사,
만의사 사찰 주변 주차장에 주차를 해놓았고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지붕 있는 에어건이 설치된 곳에서 짐을 옮기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플랜>
1. 중간 지점 데크에서 비박을 한다.
- 두 번이나 오르내렸기에 체력이 고갈되어 있어 무거운 배낭을 짊어 메고 오르기가 부담
- 비박을 하더라도 아침에 차 키를 찾을 때 배낭을 메고 다닐 수 없다는 것
2. 카카오 택시로 복귀하고 키를 가지고 내일 다시 온다.
- 외진 곳이라 차가 잡힐지가 의문
일단, 비가 제법 쏟아지니 두 번째 계획으로 선회하는데, 중요한 건 외진 곳이다 보니 차가 안 잡힌다.
시간은 저녁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내는 가게 문 닫고 저녁에 친구 상갓집 가야 한다고 아침부터 부산을 떠는 모습이 기억나 전화도 못 한다.
마침내 언 1시간 만에 '카카오 벤티'가 잡히고 타보고 싶었던 '스타리아'를 타고 집에 도착한다.
일반 택시의 2배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하며 차 안에서 나태해지고 경솔했던 내 행동들을 되돌아보며 깊은 반성을 하게 된다.
대략 24kg 정도 되는 배낭을 짊 어매고 오르고 내린 것도 힘들지만 다시 또 뛰어 올라갔다 내려온 게 컸던 것 같다.
처음 주짓수 체육관에 등록하고 운동할 당시 일주일 동안 토 나올 것 같은 느낌과 어찌나 똑같던지...
전쟁터에 처자식을 버려두고 온 불편한 마음 가득 안고 쥐가 나는 발과 다리를 달래 가며 잠을 청한다.
다음날 새벽 5시,
피곤한데도 눈이 떠진다. 하필 보조키가 회사에 있어 회사로 간다.
회사를 오가는 데만도 2시간이 소요된다.
와이프 차로 새벽같이 회사를 다녀온다
내가 벌려 놓은 일이니 누구 도움도 못 받겠고, 일단 택시를 잡아타고 만의사 주차장으로 간다.
7시 38분,
내가 가운데 기준을 서서인지 옆에 바짝 차를 세워 놓으신 분이 보였다.
AM 7:38
일단 차 주변을 샅샅이 뒤져본다.
하지만 없었다.
그렇게 정상까지 오른다.
8시 25분,
주변을 샅샅이 훑으며 쉬지 않고 올랐지만 40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어젠 쉬는 시간 포함해 1시간 10분이 소요됐었다.
다음에 오면 30분이면 오를 것 같다.
그러나 역시 키는 없었다.
체념하며 어제 못 남긴 인증샷을 남긴다.
9시 1분,
포기하고 하산하던 중 눈에 딱 들어오는 물체가 보인다.
분명 아까까지 아니 어제도 없었다.
누군가 주워서 의자에 올려놓은 것 같다.
큰소리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9시 48분,
감사한 마음 가득 안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이 주는 교훈,
이번 산행에서 큰 깨우침을 얻을 수 있었다.
나의 부주의와 계획적이지 못한 행동이 보란 듯이 가르침을 내려준 것만 같았다.
결국 1박 2일 고스란히 써가며 심지어 3번의 산행은 고통스러웠지만 그 시간을 통해 경솔했던 어제의 반성과 함께 느슨 해진 삶에 경종을 울려준 계기가 되었다.
모든 일은 결국 내가 어렵고 힘들게 만드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번 산행을 통해 깨우침을 얻을 수 있어 감사하고 탈 없이 오르 내릴 수 있어 감사한다.
앞으론 욕심부리지 않는 산행 그리고 계획적인 삶을 살아야겠단 생각으로 글을 남겨본다.
<추가 >
이번 산행에서 일등 공신은 '등산화'였다.
수북이 쌓인 낙엽, 퍼붓는 비에도 미끄러지거나 물이 차는 문제가 거의 없었다.
1개월 전 즈음 이 등산화를 구입하려 할 때 '고어텍스' 등산화 사이에서 상당히 고민 많이 했었다.
험토 등산화?!
작년에 트래킹 용으로 험토 릿지화를 구매하였고, 가격 대비 나름 괜찮다고 판단해 이번엔 방수가 되는 등산화를 물색하던 중 베이지색의 이쁜 컬러에 매료되어 선뜻 구입했다.
쿠팡 새벽 배송으로 도착하며 다시금 고민했었다.
'기왕 사는 거 고어텍스 제품으로 사야 되는 거 아닌가..' 하면서 그래도 왔으니 박스라도 개봉해 본다.
그런데, 이게 모니터로 본 색상과 어찌나 똑같던지 반품 의사가 싹 사라진다.
'험토 워터프루프 밀포드 등산화'
이름이 참 길다.
등산화에 붙은 택에 'HUMTO-TEX'라는 기술 용어가 보이는데 그냥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고어텍스도 아니고 험토텍스는 뭐래...'
이후 험토와 세 번의 등산을 다녀온다.
광교산, 선자령, 무봉산.
선자령에서 일단 빛을 발했고, 그리고 이번 무봉산에서 험토텍스의 방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해 주었다.
사이즈는 평상시 신는 정 사이즈로 주문했는데 등산양말 신고도 딱 맞는 거 보니 한 치수 큰 거 샀으면 교환할 뻔했다.
여하튼 내 돈 내산이고 험토 등산화 덕에 무사 귀환할 수 있게 되어 잠시 끄적여 본다.
"고맙다, 험토!"
산에서 얻은 깨달음
글, 사진ⓒVO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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